농수산 부산물과 버섯 균사체로 만든 어스폼 제품들. 스티로폼 없어지는 날까지 파이팅...! /오늘 사진은 모두 어스폼 제공.
스티로폼 쓰레기가 싫어서 냉동식품류 택배는 절대 기피하는 독자님 계십니까? 스티로폼은 폴리스티렌(=플라스틱)이고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립니다. 스티로폼 부표는 바다에 그대로 버려져서 바다 생물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건물 단열재용 스티로폼은 이물질이 많이 묻어서 재활용도 어렵다고. 우리나라에서 매년 배출되는 스티로폼은 7만4815톤(2020년 기준), 이 중 얼마나 재활용되는지는 통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티로폼을 대체할 친환경 소재를 만드는 '어스폼'을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톱밥, 맥주 찌꺼기+버섯 균사체=어스폼
어스폼은 말라죽은 나무로 만든 톱밥,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감자 껍질, 굴 껍데기 같은 부산물로 친환경 포장·완충재를 개발했습니다. 비결은 버섯 균사체. 톱밥 같은 원료를 몰드(틀)에 담은 다음 균사를 '접종'하면 균사가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하얗게 자라납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몰드에서 꺼내서 말리고 굳히면 완성.
◆잠깐...버섯이 자라버리진 않을까요?
균사가 버섯으로 자라나려면 일정한 영양분과 온도, 습도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어스폼은 그러기 전(=버섯 생장점이 생기기 전)에 몰드에서 꺼내 건조시키기 때문에 균사가 죽고, 버섯도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스폼을 설립한 제민(왼쪽) 팀장, 정성일 대표, 김용현 CSO.
어스폼을 설립한 정성일 대표님은 역시 공대 출신이신데,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던 친구들과 '00(공공)스페이스', '팹브로스제작소'를 꾸렸다가 어스폼까지 설립하게 됐습니다. 00스페이스&팹브로스제작소는 쉽게 말하면 금속, 목재 등 다양한 소재를 가공하고 건축물 모형부터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까지 온갖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예술가나 스타트업 등이 주된 고객. 아이언맨 같은 이야기죠?
그런데 가만 보니까 "세상에 없는 걸 만들다보니, 양산이 아니라 맞춤제작이다보니 쓰레기가 엄청 나오더라"는 겁니다.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정 대표님은 어스폼도 세워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미국에서 버섯균사체로 스티로폼 대체재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해볼 만하다 싶어서 시작해본 겁니다. 다행히 00스페이스, 팹브로스제작소에 이미 장비가 갖춰져 있으니까 시작이 수월했다고.
①톱밥 등 다양한 원료와 배양 중인 균사체. ②미니 화분, 패키지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본 제품들. 킷캣 사이즈의 흰색 시제품이 무지무지 부드러워서 손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들이 얼마나 내구성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직접 만져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원료 배합 방법, 온도 등 배양 조건에 따라 내구성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못을 박아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질감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대표님이 보여주신 실물 제품 중 몇 개는 촉감이 벨벳 뺨지게 보드라워서 감탄했습니다.
조건 없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생분해는 잘 될까요? 어스폼 제품은 일반적인 토양에서 50일 이내, 바다에선 150일 이내에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온도나 습도도 상관 없이 잘 부숴서 버리면 되니까 "잘게 부순 낙엽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대표님의 설명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재미있는 TMI 모아봅니다. 우선 나무(목질계 재료)도 수종마다, 입자의 크기마다 생장 속도가 다르단 게 신기했습니다. 또 균사가 좋아하는 PH 농도가 있어서 맞춰줘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귤껍데기는 너무 산성이니까 자연추출물로 어느 정도 중화해서 맞춰준다고. 온갖 농수산 부산물 중에 제일 잘 자라는 소재는 "대외비"란 대표님 말씀.
버섯 균사체는 결국 균(=곰팡이)의 한 종류인데, 왜 하필 버섯균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대표님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균들은 웬만하면 유해하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빨리 생분해되는 것도 곤란하겠죠? 그래서 오래 써야 되는 제품, 예를 들어 바다의 부표는 자연추출물로 만든 코팅을 입혀서 수 년간 유지되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만 단단하게 만들수록 생분해 속도도 느려지니까, 용도에 딱 맞는 수준의 강도와 내구성을 갖추는 게 중요해서 다양한 '레시피'를 만드는 중이라고. 정 대표님은 "분리배출이 애매한 화분, 바다의 부표, 건축 소재 등 어스폼이 진출할 분야가 아주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일부 지역이 스티로폼 제조·수입·사용을 금지했고 정부도 2026년까지 전국의 스티로폼 부표(무려 5500만개)를 친환경 소재로 교체하겠다고 한 만큼 기회가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산 원가는? 고사목 톱밥, 맥주 찌꺼기 등 공짜로 조달할 수 있는 원료가 많아서 스티로폼 수준까지 가격을 맞출 수 있을 전망입니다. 탄소국경세, 생산자재활용책임제(EPR) 등 친환경 규제 강화로 스티로폼 가격이 점점 비싸지는 추세인 만큼 충분히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탄소배출량도 제품 생산 과정에서 스티로폼 대비 80% 이상, 폐기 과정에선 70% 이상 절감 가능한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폐기하기 위해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것들을 재료로 쓰는 게 우리의 최대 장점"이라는 정 대표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스폼은 이미 화장품 회사 등과 협업한 데 이어 현재 모 향수 브랜드의 패키지를 포함한 3가지 제품의 양산(수천 개 단위)에 돌입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구용사님들과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서 어스폼이 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UIYLS8WJ)
농수산 부산물과 버섯 균사체로 만든 어스폼 제품들. 스티로폼 없어지는 날까지 파이팅...! /오늘 사진은 모두 어스폼 제공.
스티로폼 쓰레기가 싫어서 냉동식품류 택배는 절대 기피하는 독자님 계십니까? 스티로폼은 폴리스티렌(=플라스틱)이고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립니다. 스티로폼 부표는 바다에 그대로 버려져서 바다 생물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건물 단열재용 스티로폼은 이물질이 많이 묻어서 재활용도 어렵다고. 우리나라에서 매년 배출되는 스티로폼은 7만4815톤(2020년 기준), 이 중 얼마나 재활용되는지는 통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티로폼을 대체할 친환경 소재를 만드는 '어스폼'을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어스폼은 말라죽은 나무로 만든 톱밥,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감자 껍질, 굴 껍데기 같은 부산물로 친환경 포장·완충재를 개발했습니다. 비결은 버섯 균사체. 톱밥 같은 원료를 몰드(틀)에 담은 다음 균사를 '접종'하면 균사가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하얗게 자라납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몰드에서 꺼내서 말리고 굳히면 완성.
균사가 버섯으로 자라나려면 일정한 영양분과 온도, 습도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어스폼은 그러기 전(=버섯 생장점이 생기기 전)에 몰드에서 꺼내 건조시키기 때문에 균사가 죽고, 버섯도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스폼을 설립한 제민(왼쪽) 팀장, 정성일 대표, 김용현 CSO.
어스폼을 설립한 정성일 대표님은 역시 공대 출신이신데,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던 친구들과 '00(공공)스페이스', '팹브로스제작소'를 꾸렸다가 어스폼까지 설립하게 됐습니다. 00스페이스&팹브로스제작소는 쉽게 말하면 금속, 목재 등 다양한 소재를 가공하고 건축물 모형부터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까지 온갖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예술가나 스타트업 등이 주된 고객. 아이언맨 같은 이야기죠?
그런데 가만 보니까 "세상에 없는 걸 만들다보니, 양산이 아니라 맞춤제작이다보니 쓰레기가 엄청 나오더라"는 겁니다.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정 대표님은 어스폼도 세워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미국에서 버섯균사체로 스티로폼 대체재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해볼 만하다 싶어서 시작해본 겁니다. 다행히 00스페이스, 팹브로스제작소에 이미 장비가 갖춰져 있으니까 시작이 수월했다고.
①톱밥 등 다양한 원료와 배양 중인 균사체. ②미니 화분, 패키지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본 제품들. 킷캣 사이즈의 흰색 시제품이 무지무지 부드러워서 손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들이 얼마나 내구성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직접 만져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원료 배합 방법, 온도 등 배양 조건에 따라 내구성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못을 박아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질감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대표님이 보여주신 실물 제품 중 몇 개는 촉감이 벨벳 뺨지게 보드라워서 감탄했습니다.
그렇다면 생분해는 잘 될까요? 어스폼 제품은 일반적인 토양에서 50일 이내, 바다에선 150일 이내에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온도나 습도도 상관 없이 잘 부숴서 버리면 되니까 "잘게 부순 낙엽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대표님의 설명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재미있는 TMI 모아봅니다. 우선 나무(목질계 재료)도 수종마다, 입자의 크기마다 생장 속도가 다르단 게 신기했습니다. 또 균사가 좋아하는 PH 농도가 있어서 맞춰줘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귤껍데기는 너무 산성이니까 자연추출물로 어느 정도 중화해서 맞춰준다고. 온갖 농수산 부산물 중에 제일 잘 자라는 소재는 "대외비"란 대표님 말씀.
버섯 균사체는 결국 균(=곰팡이)의 한 종류인데, 왜 하필 버섯균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대표님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균들은 웬만하면 유해하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빨리 생분해되는 것도 곤란하겠죠? 그래서 오래 써야 되는 제품, 예를 들어 바다의 부표는 자연추출물로 만든 코팅을 입혀서 수 년간 유지되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다만 단단하게 만들수록 생분해 속도도 느려지니까, 용도에 딱 맞는 수준의 강도와 내구성을 갖추는 게 중요해서 다양한 '레시피'를 만드는 중이라고. 정 대표님은 "분리배출이 애매한 화분, 바다의 부표, 건축 소재 등 어스폼이 진출할 분야가 아주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일부 지역이 스티로폼 제조·수입·사용을 금지했고 정부도 2026년까지 전국의 스티로폼 부표(무려 5500만개)를 친환경 소재로 교체하겠다고 한 만큼 기회가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산 원가는? 고사목 톱밥, 맥주 찌꺼기 등 공짜로 조달할 수 있는 원료가 많아서 스티로폼 수준까지 가격을 맞출 수 있을 전망입니다. 탄소국경세, 생산자재활용책임제(EPR) 등 친환경 규제 강화로 스티로폼 가격이 점점 비싸지는 추세인 만큼 충분히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탄소배출량도 제품 생산 과정에서 스티로폼 대비 80% 이상, 폐기 과정에선 70% 이상 절감 가능한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폐기하기 위해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것들을 재료로 쓰는 게 우리의 최대 장점"이라는 정 대표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스폼은 이미 화장품 회사 등과 협업한 데 이어 현재 모 향수 브랜드의 패키지를 포함한 3가지 제품의 양산(수천 개 단위)에 돌입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구용사님들과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서 어스폼이 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UIYLS8WJ)